프라이빗 공간이 필요할 때
일산명월관요정을 찾게 된 건 2019년 11월의 일 때문이다. 강남 고깃집, 삼겹살 연기 자욱한 2층 테이블. 나는 팀장과 함께 신규 사업 인수 건을 논의하고 있었다. 목소리가 커진 건 소주 두 병째부터였다. 인수 대상 회사명, 예상 금액, 일정. 전부 입 밖에 나왔다. 다음 날 아침 9시, 경쟁사 이사한테 카톡이 왔다. "어제 흥미로운 얘기 들었는데, 커피 한잔 할까요?"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같은 고깃집 대각선 테이블에 그 회사 직원이 앉아 있었던 거다.
그 뒤로 나는 오픈된 공간이 무섭다. 카페에서 노트북 열고 회의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찔하다. 고깃집에서 사업 얘기하는 목소리가 들리면 남의 일인데도 조마조마하다. 중요한 대화는 벽과 문이 필요하다. 이건 원칙이 아니라 생존 본능이다.
일산명월관요정을 처음 간 날, 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테스트를 했다. 같이 간 후배한테 말했다. "밖에 나가서 문 닫고 서 있어봐. 내가 안에서 큰 소리로 얘기할 테니까." 후배가 나갔다. 미닫이문이 닫혔다. 나는 보통 대화 크기로 얘기했다. 1분 뒤 후배가 들어와서 말했다. "형, 진짜 하나도 안 들려요. 문 닫혀 있는 것만 아니었으면 빈 방인 줄 알았을 거예요."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비즈니스 얘기를 했다. 그 해방감이란.
방 안은 세계가 바뀐다. 문이 닫히는 순간 바깥 소리가 사라지고, 안의 소리도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 직원은 반드시 노크를 하고, 대답을 듣고 나서 문을 연다. 다른 방에 누가 왔는지, 우리 방에 누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인수합병, 인사 발령, 내부 감사 결과 —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이 문장의 무게를 알 거다.
한번은 노트북을 가져갔다. 밥상 한쪽에 올려놓고 프레젠테이션을 돌렸다. 소갈비탕 김이 모니터 위로 피어오르는 게 좀 웃겼지만, 이상하게 회의실보다 말이 잘 나왔다. 상대방도 넥타이를 풀고 바닥에 다리 뻗고 앉아 있으니까 "솔직히 이 부분은 좀 걱정인데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서 있으면 닫히는 입이 앉으면 열린다. 딱딱한 의자에서는 안 나오는 말이 따뜻한 바닥에서는 나온다.
비즈니스 얘기만 하면 이 공간이 너무 차갑게 들리는데, 사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개인적인 자리였다. 작년 가을, 10년 지기 친구가 이혼 절차를 밟고 있었다. 만나자고 했다. 카페에서 만날까 하다가 여기로 데려왔다. 방에 앉아서 한정식 코스를 먹으면서, 친구는 두 시간 동안 얘기했다. 중간에 울었다. 카페였으면 불가능했을 거다. 사람들 눈치 보면서 눈물을 참거나, 아예 말을 꺼내지 못했겠지. 이 방은 친구에게 울어도 되는 공간을 줬다. 닫힌 문이 사람을 열어주는 거였다.
현실적인 얘기를 하자. 혼자 가긴 좀 그렇다. 방이 넓으니까 혼밥은 오히려 허전하다. 두 명이면 괜찮고, 네다섯 명이면 딱이다. 여덟 명 이상이면 큰 방을 따로 잡아야 한다. 방마다 크기가 다르니까 예약 전화할 때 인원수를 정확히 말해라. "네 명인데 너무 좁지 않게 해주세요" 하면 거기에 맞는 방을 잡아준다. 여섯 명 이상이면 "ㄱ자로 앉을 수 있는 방이요" 같은 구체적인 요청도 통한다.
세상에 닫히는 문이 많다. 호텔 연회장도 문이 있고, 스시야에도 개인실이 있다. 근데 문이 닫히고, 바닥이 따뜻하고, 음식이 코스로 나오면서, 가야금 소리까지 방 안에 울리는 곳은 많지 않다. 비밀은 금고에만 넣는 게 아니다. 가끔은 따뜻한 방 안에 풀어놓는 게 더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