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라이브 소름 돋았던 순간

일산명월관요정에서 가야금을 듣기 전까지, 나는 국악을 무시했다. 고등학교 때 음악시간에 판소리 틀어줬는데 진짜로 잤다. 엎드려서. 가야금? 그건 뭐 드라마 대장금에서 나오는 거 아닌가. 대학 때 친구가 국악과라서 연주회 한 번 간 적 있는데 20분 만에 나왔다. 그 친구한테 미안하긴 한데 솔직히 졸려 죽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내가 국악 때문에 소름 돋을 인간이 아니라는 거다. 절대. 근데 돋았다.

지난 1월 셋째 주 토요일. 저녁 7시쯤이었나. 일산명월관요정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갈비찜을 뜯고 있는데 직원분이 조용히 옆에 와서 말했다. "잠시 후에 공연이 있으세요." 나는 속으로 '아 뭐 스피커에서 배경음악 나오겠지' 했다. 그 정도로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문이 열렸다. 사람이 들어왔다. 한복을 입은 여자분이었는데 남색 저고리에 아이보리색 치마. 기억나는 이유는 나중에 말한다. 그분이 가야금을 안고 있었다. 진짜 가야금. 생각보다 컸다. 우리 방 안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하고 거리가 한 1.5미터? 2미터도 안 됐다. 앞에 앉은 후배 민수 뒤통수 너머로 그분 손가락이 바로 보였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줄 위에 손을 올렸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아직 아무 소리도 안 났는데 벌써 조용해졌다. 이상한 긴장감이 있었다.

통.

첫 음. 하나. 딱 하나.

뭐라고 설명해야 되지 이걸. 그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공기의 질감이 바뀌는 느낌이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나무통 안에서 울려나오는 소리. 줄이 떨리는 게 눈에 보였고, 그 떨림이 소리가 되어서 내 가슴팍까지 왔다.

통통. 댕—. 탱탱탱.

손가락이 줄 위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느린 곡이었다. 제목은 모른다. 나중에 물어볼 걸 그랬다. 근데 슬픈 곡이라는 건 3초 만에 알았다. 가사가 없는데 어떻게 슬픈지 아느냐고? 나도 모르겠다. 몸이 먼저 알았다. 목 안쪽이 뜨거워졌다. 이게 뭐지. 나 지금 뭐가 되는 거지.

한 3분쯤 지났을 때. 민수가 고개를 숙였다. 처음엔 핸드폰 보는 줄 알았다. 근데 어깨가 움직였다. 아 이 자식 울고 있었다. 32살 남자가 가야금 소리에 울고 있었다. 나중에 밖에서 담배 피우면서 물어봤다. "야 왜 울었어." 민수가 담배 연기를 후 내뱉으면서 말했다. "몰라요 형. 그냥 울었어요. 할머니 생각났어요 갑자기." 민수 할머니는 3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 한마디에 나도 코끝이 시큰해져서 말을 못 했다.

다시 방 안 얘기로 돌아가면. 첫 번째 곡이 끝나고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두 번째 곡.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손가락이 빨라졌다. 통통통통통. 줄을 때리는 것 같기도 하고 튕기는 것 같기도 한. 장단이 올라가니까 내 심장 박동도 같이 올라갔다.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맞은편에 앉았던 김 부장님이 갑자기 "좋다!" 하고 추임새를 넣었다. 평소에 조용한 사람인데. 그게 또 자연스러웠다. 연주자분이 살짝 미소 지었다. 그 남색 저고리 아래로.

세 곡이었다. 시간으로 한 15분에서 18분 사이. 끝나고 연주자분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나갔다. 문이 닫혔다. 아무도 입을 안 열었다. 진짜 한 5초? 7초? 침묵이었다. 그러다가 김 부장님이 소주잔을 들면서 말했다. "...이거 뭐냐. 미쳤다."

나는 그날 이후로 유튜브에서 가야금 영상을 찾아봤다. 근데 안 된다. 똑같은 악기인데 소리가 다르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가야금은 그냥 예쁜 소리다. 근데 눈앞에서, 1.5미터 앞에서, 나무통이 울리고 줄이 떨리고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그 속에서 듣는 가야금은. 완전히 다른 물질이다. 음악이 아니라 어떤 물리적인 힘이다. 공기를 타고 와서 갈비뼈 사이를 파고드는.

알아둘 것. 공연은 아무 때나 안 된다. 예약할 때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공연 중에 전화받는 건 제발 하지 마라. 이건 예의라기보다 당신 손해다. 15분짜리 마법을 전화벨 소리로 깨면 그게 얼마나 아까운 건지.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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